유니클로가 '다크 아카데미아'를 입기 쉽게 만들었다
JW 앤더슨이 그린 가을학기 교복
JW 앤더슨이 그린 가을학기 교복
유니클로가 10월 15일 조나단 앤더슨과 함께 선보이는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매장 진열대가 아니라 교실 책상과 도서관 서가에서 영감을 가져왔다. 극작과 학문의 세계, 그리고 그 경계에서 터져 나오는 자유로운 창작욕을 테마로 삼은 이번 협업은 여성복 13종, 남성복 12종, 액세서리 4종으로 구성되어 지금까지 나온 유니클로×JW 앤더슨 라인 중에서도 서사가 가장 뚜렷한 축에 속한다. 도나 타르트의 소설 『비밀의 계절』이 그려낸 폐쇄적이고 지적인 캠퍼스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이 컬렉션이 지금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순하다. 몇 년째 SNS를 타고 번지던 '다크 아카데미아' 감성, 즉 트위드와 니트, 플리츠스커트로 완성되는 교복풍 룩이 더 이상 소수 마니아의 취향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옷으로 내려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패션위크 런웨이에서나 보던 '지적인 반항'의 무드가 동네 유니클로 매대로 옮겨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 대중화되는 속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만하다. 특정 디자이너 하우스에서만 소화되던 서사형 컬렉션을, 매 시즌 신상이 몇 주 단위로 바뀌는 SPA 브랜드가 그대로 들여와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단순한 겨울 외투 출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성별 구분을 허무는 방식이다. 젠더리스로 설계된 숏 블루종은 크롭 기장과 릴랙스핏을 동시에 적용해 남녀 모두가 같은 실루엣을 공유하도록 만들었고, 여성용 패디드 숏 재킷은 볼륨감 있는 패딩으로 같은 라인 안에서도 뚜렷한 대비를 준다. 니트웨어의 비중도 눈에 띄게 늘었다. 브이넥 스웨터와 크루넥 베스트가 다양한 색상과 패턴으로 전개되며 레이어링의 중심축 역할을 맡았고, 겨울을 대비한 플리스 숏 블루종까지 더해지면서 추운 날씨에 맞춘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비대칭 플리츠 스커트는 정적인 교복 이미지에 움직임을 불어넣는 장치로 기능하며, 비니와 양말, 가방 같은 액세서리가 전체 룩을 완성한다. 과거 협업이 특정 디자인 모티프 하나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상의부터 하의, 소품까지 하나의 세계관 아래 촘촘히 엮였다는 점에서 완성도의 결이 다르다. 실용적인 유니클로의 기본기에 극장 의상이 가진 서사성과 디테일을 입힌 결과, 평범한 일상복이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옷으로 바뀐 셈이다. 아이템 하나하나를 따로 사도 되지만, 전체를 맞춰 입으면 소설 속 인물이 걸칠 법한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되도록 설계된 점이 이번 라인의 핵심이다. 색상 구성도 캠퍼스 룩 특유의 차분한 톤으로 통일돼 있어, 낱개로 구매해도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겹쳐 입을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왜 지금인가
조나단 앤더슨에게 이번 테마는 낯설지 않다. 그는 본래 배우를 꿈꾸며 연기를 공부하다가 무대 의상 디자인으로 방향을 틀었고, 2005년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에서 남성복을 전공한 뒤 2008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세운 인물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출발한 그의 미감이 유니클로라는 매스마켓 브랜드와 만난 지도 여러 시즌째다. 앞서 2023년 가을·겨울 협업이 영국 현대 건축과 중반세기 디자인 언어를 빌려왔다면, 이번에는 그 범위를 극장 문화와 학문적 창의성으로 넓혔다. 이렇게 테마를 매 시즌 갱신하면서도 '실용적 기본템 위에 지적인 서사를 얹는다'는 공식만은 유지해온 셈이다. 앤더슨은 이번 시즌을 두고 "이번 시즌은 속박되지 않은 창의성이 교차하는 극장과 학문 문화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마침 가을은 새 학기와 겹치는 계절이라 학구적인 이미지의 옷이 유독 소구력을 갖는 시기이기도 하다.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니라 유니클로 매장에서 이런 룩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정 미학이 소수의 취향에서 다수의 일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더해, 매 시즌 같은 두 이름이 반복해서 협업하면서도 매번 다른 지적 레퍼런스를 꺼내 들었다는 점은, 하나의 협업 포맷이 피로감 없이 오래 유지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다음에 볼 것
컬렉션은 10월 15일부터 유니클로 공식 홈페이지와 매장에서 순차 공개된다. 협업 라인 특유의 빠른 품절 패턴을 감안하면, 특히 젠더리스로 나온 숏 블루종이나 비대칭 플리츠 스커트처럼 상징성이 강한 아이템은 출시 당일 사이즈가 먼저 빠질 가능성이 높다. 가격과 사이즈 구성은 브랜드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이 협업이 단발성 화제로 끝나는지, 아니면 매 시즌 이어지는 정규 라인으로 자리 잡는지다. 앤더슨과 유니클로의 협업은 이미 여러 시즌 쌓여 왔고, 그때마다 테마를 건축·디자인사·극장 문화 등으로 갈아타며 같은 포맷을 반복 재생산해왔다. 이 패턴이 유지된다면 다음 시즌 역시 또 다른 지적·문화적 레퍼런스를 입힌 형태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매스마켓 브랜드가 고급 디자이너의 세계관을 저렴한 가격에 반복적으로 풀어내는 이 방식 자체가, 패션이 특정 취향을 대중화하는 속도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다크 아카데미아 무드가 이번 시즌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협업, 다음 시즌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이 포맷을 다른 브랜드들이 어떤 식으로 따라갈지도 함께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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